수건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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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이면 국내 최대 책축제인 서울국제도서전(이하 도서전)이 기다려집니다. 책 담당 기자가 된 뒤로 도서전에 꼭 참석해왔습니다. 읽을 거리, 볼거리,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풍성할 뿐만 아니라, 유명 작가와 출판계 주요 인사들, 그리고 세계 각국의 다양한 책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엔(n)차 관람을 했습니다.
지난해 도서전은 5일간 15만명 이상이 방문하며 역대급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와 도서전을 주최하는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도서전 수익금 처리나 출판 관련 정책 등으로 갈등이 지속되었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출협에 직접 지원하던 도서전 관련 보조금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30대 여성 관람객들이 몰려들었고, 많은 이들이 1~2시간 줄을 서서 도서전을 관람하려 해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이번 도서전은 오는 18일부터 22일까지 5일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립니다. 총 17개국 530여개의 국내외 출판사 및 출판 관련 단체, 저작권 에이전시가 참여한다고 합니다. 지난해의 열기가 올해까지도 이어질지 궁금한데요.
올해 도서전의 주제는 ‘믿을 구석’인데요. 경제적 어려움, 정치적 혼돈, 자연 재난까지 끊임없는 고난과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 “힘들 때, 외로울 때, 당신이 기대는 ‘믿을 구석’은 무엇인가요?”라고 묻고 있습니다. 저에게 ‘믿을 구석’은 책, 사람, 그리고 걷기입니다. 어린 시절 외롭고 힘들 때 책 속에서 용기와 지혜를 얻었고, 인생의 고비마다 ‘좋은 사람’ 덕분에 일어설 수 있었지요. 또 매일 걷는 습관이 건강에 대한 믿음을 키워줍니다. 여러분의 ‘믿을 구석’은 무엇인가요?
근 20년 만에 고향을 방문해 문학 강연을 했다. 말문을 열면서 청중에게 두 가지 질문을 제시했다. 첫째 ‘시인은 우주의 한 모퉁이씩이나 되는가?’, 둘째 ‘시인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어야 할까?’ 첫 번째 질문은 논두렁길을 함께 걷다가 발을 헛디딘 함민복 시인에게 어느 소설가가 했다던 말에서 비롯한다. “아이쿠, 시인이 다치는 것은 우주의 한 모퉁이가 깨어지는 것과 같은데….” 이 일화는 아주 오래전에 읽은 함 시인의 산문집에 나온다(기억에 의지한 것이라 대사가 꼭 같지는 않지만 뜻은 정확하다). 두 번째 질문은 15년째 〈시사IN〉에 격주로 신간을 소개해온 나 자신으로부터 생겨났다. 많은 책을 읽으면 시나 소설을 쓸 때 도움이 될까.
다산 정약용(1762~1836)과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는 각기 조선과 영국에 떨어져 살았다. 두 사람은 만난 일이 있기는커녕 서로의 존재를 알지도, 서로의 글을 읽지도 못했다. 대신 그들의 생몰연대에서 알 수 있듯이 다산과 블레이크는 동시대를 살았다. 두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당대의 조선과 영국은 거대한 시대적 변환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같은 공간에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정약용은 실학(實學)의 집대성자다. 실학을 정의하고 설명하는 방법으로 다산이 펼친 경세론(국가 운영 논리)을 제시할 수도 있지만, 실학은 성리학의 반대 노선으로 손쉽게 파악된다. 한 마디로 성리학은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가난한 아이 앞에서 좋은 옷과 맛난 음식을 자랑하는 부잣집 아이가 많지만 그것을 자랑하지 않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앞의 아이보다 분명 ‘더 나은 인간’일 것이다. 또 자기 집이 부자라는 것을 자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난한 아이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앞의 아이보다 훨씬 ‘더 나은 인간’일 것이다. 더 나아지기 위한 수련(교육)을 차곡차곡 밟은 끝에 인간은 성인(聖人)이 된다. 수건세트 이것이 성리학의 요체라면, ‘조선 왕조는 성리학 때문에 망했다’라고 저주하는 게 이상하다.
성리학에서는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인간에게 주어진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누구는 더 많이 갖고 태어나고 누구는 적게 갖고 태어나는 것이 본연지성이다. 개는 훈련을 받으면 ‘더 나은 개’가 되지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상민(常民)은 더 나은 상민이 되고, 서얼(庶孼)은 더 나은 서얼이 되고, 여자는 더 나은 여자가 되고, 오랑캐는 더 나은 오랑캐가 될 수 있지, ‘더 나은 인간’은 못 된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으니, 성리학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는 말도 괜히 나오지 않았다.
신입생 시절 접한 여섯 행
다산이 누적된 사회적 모순이 터져 나오는 조선 후기의 변동기를 살았다면, 블레이크는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이라는 경제·정치적 변혁기를 살았다. 그의 대표 시 가운데 한 편은 132행에 걸쳐 2행 대구(對句)가 이어지는 ‘순수의 전조’다. 생태사상가이자 문학평론가였던 고 김종철 선생은 마지막 문학평론집 〈대지의 상상력〉(녹색평론사, 2019)에서 영문학 신입생이던 때 우연히 이 시의 다음 여섯 행을 접했던 것이 훗날 〈녹색평론〉을 발행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새장에 갇힌 울새 때문에/ 천국이 분노에 휩싸인다./ 비둘기로 가득 찬 비둘기 집 때문에/ 지옥 전체가 부들부들 떤다. / 주인집 문 앞 굶주린 개는/ 국가의 멸망을 예언한다.”